아이들의 목소리를 지켜주는 것이 어른의 일
『이 아이를 삭제할까요?』 김지숙 작가 서면 인터뷰
'늘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 역시도 그러지 못했어요. 때로는 충분히 용감해질 수 없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할 겁니다. 또한 진실을 선택하고도 칭찬받을 수 없기도 합니다. 때때로 진실은 거짓보다 뼈아픈 것이니까요. (2024.09.02)
『이 아이를 삭제할까요?』는 ‘파란 나라’라는 의문의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 소년이 그 비밀을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전작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가 스타 오디션, 학교폭력, 타로점 등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었다면, 이번 신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더 깊고 짙은 파랑의 바닷속으로 잠수한 듯한 신비로움에 미스터리가 더해졌다. 그간 작가 개인에게, 또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들이 찾아온 걸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이라는 익숙한 도입부로 유명한 노래 〈파란 나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하셨는데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상상하셨던 스토리인가요? 아니면 어떤 시간들을 겪은 이후에 노래가 다르게 들리셨던 건가요?
처음 온새미로라는 곳을 만들고 이야기를 써나가던 중 불현듯 노래 '파란 나라'를 떠올렸어요. 그러자 밋밋한 빵 반죽 같던 이야기가 순식간에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부분 가사가 제 이야기에 와서 착 붙었어요.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가사가 신비롭고도 슬펐어요. 그때부터 이 소설의 가제는 <파란 나라>가 되었고, 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전작인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의 속도감은 그대로이면서도 작품 세계가 한층 깊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이 아이를 삭제할까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가 ‘부모’일 텐데요. 부모로서의 경험이 창작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엄마가 되는 일이 저를 얼마나 바꿀지 상상도 못했어요. 나는 그대로인 채, 내 인생에 아이가 한 명 추가될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엄청난 착각이었죠. 엄마라는 정체성이 더해지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이 통째로 바뀌는 거였어요. 마치 윈도우 업데이트처럼요.
저는 불안과 혼돈과 긴장으로 점철된 사람으로 업데이트 되었어요. 불행한 사고, 자연재해, 전쟁난민이 나오는 뉴스를 보고나면 불안으로 잠을 설쳤어요. 눈물이 많아지는 한편,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안의 폭력성을 발견했어요. 그러한 변화가 이 소설을 쓰게 만든 것 같아요. 고백하자면, 이 소설은 어느 시점까지는 청소년이 아닌 저와 같은 부모님들을 위해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커지더군요. 우리가 주인공이야! 하고 저에게 알려주듯이 말이죠. 덕분에 부모의 일이란 아이들의 목소리를 지켜주는 일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출판사에서 ‘결말 부분과 제목 일부’를 삭제한 가제본으로 출간 전 서평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독자의 호기심을 더 증폭시키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지만 작가 입장에서 약간 부담스러우시진 않았나요? 소위 ‘스포일러’가 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된다고 판단하시는지 궁금해요.
소설이란 쓸 때까지만 작가의 것이지,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나간 순간부터는 독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부터 읽든, 거꾸로 읽든, 띄엄띄엄 읽든, 읽다가 덮어버리든 그건 모두 독자분들의 마음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은 독자분들은 충분히 배려받아야 마땅하고요.
작가로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자면, 서평 이벤트에서 여러분의 예측이 빗나갈 때마다 (약간의 미안함과 동시에) 창작자로서의 은밀한 기쁨도 느꼈답니다. 한편 이벤트에 참여한 독자분 중 제목에 감춰진 단어와 소설의 의도, 단서들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분석한 분이 있어서 놀라기도 했어요! 서평 이벤트는 작가인 저도 함께 즐긴 셈이예요.
소설 속 파란 나라(온새미로)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작가님과 가장 닮았다고 느껴지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일단 파랑이는 아니고요, 얘는 너무 용감하고 밝거든요. 그리고 전 우주처럼 치밀하지도 않고, 우령이처럼 감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편도 아닙니다. 저는 보통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에게 저를 투영하는 편이예요. 이번에는 반장인 세림이와 제가 닮았다고 생각해요. 얼핏 보면 모범생이고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자기만의 꿈과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됩니다.
주인공 파랑이는 진실을 앞에 두고 주저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등 돌릴 것인가를 두고요. 삶의 진실을 마주하며 살아갈 아이들에게 건네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늘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 역시도 그러지 못했어요. 때로는 충분히 용감해질 수 없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할 겁니다. 또한 진실을 선택하고도 칭찬받을 수 없기도 합니다. 때때로 진실은 거짓보다 뼈아픈 것이니까요.
다만, 그 모든 경험과 선택이 삶의 궤적으로 남아 여러분을 성장시킬 거예요. 그러니까 허투루 그 경험들을 넘겨버리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그 고민, 갈등을 가치 있게 여기셨으면 좋겠어요.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제 한국에도 ‘청소년 소설’이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청소년들을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는 것이 일반 소설과 차별점일 수 있겠지만, 좋은 소설이라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곤 하죠. 작가님은 어떤 과정 속에서 점점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셨는지, 청소년 소설의 가장 큰 특징 혹은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청소년 소설을 딱 한 권만 쓰려고 했어요. 십대 때 해결되지 않은 친구문제가 있었거든요.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첫 소설을 쓰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계속 쓰게 되었고, 네 번째 소설까지 출간하게 되었네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저에게도 '성장'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 소설은 필연적으로 '성장소설'의 양상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소설을 쓰면서 저도 성장을 경험한 거죠.
어른이 된 지금도 저는 제가 미숙하다고 느껴요. 최선을 다해서 감출 뿐이죠. 하지만 청소년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미숙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주고 모두가 응원해주지요. 저는 그것이 청소년 소설의 매력이자, 성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아있는 한, 성장의 기회는 늘 주어지는 거니까요.
작가님 소설의 열렬한 팬으로서, 현재 집필 중이거나 구상 중이신 소설들이 궁금합니다. 살짝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귀신이 된 청소년 얘기를 쓰고 있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완성하려고 애쓰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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